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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생각

왓챠, 온전한 취향의 기록에 대하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왓챠를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에 별점을 주면 그걸 기반으로 다른 영화의 예상별점을 주는 앱이다. 평가를 많이 할 수록 정확도가 높아져서 내가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록하고, 어떤 영화를 볼지 가이드가 되어주는 앱이라 너무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추천을 망설였던 것은, 몇 번 추천했을 때 친구맺자는 얘기를 들어서다. 여기에 친구 추가 기능이 있는데 친구를 맺으면 나와의 취향 일치도가 나온다. 단순하게는 상대방의 별점, 나아가서는 취향도 알 수 있다. 취향을 드러낸다는 것이 아직 나에게는 소중하고 굉장히 개인적인 부분이라서 나는 친구 맺는 건 거절해야했는데, 그게 좀 껄끄러웠다. 나의 특기인 철벽치기가 또 나오는 기분이었다. 내 특기이긴하지만 상대한테 너는 이 철벽 밖이야를 너무 공격적으로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어쨌든 왓챠를 추천한다는 것은 내가 이 앱을 쓴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니 취향은 어떤데- 라고 연결되어 친구를 맺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 내가 기꺼이 친구를 맺을 수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도 몇몇 있었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니 이 앱의 추천이 조심스럽더라. 차라리 온라인의 모르는 사람들하고 하면 할까, 오프라인으로 적당히 아는 사람들에게 나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내가 원치 않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되는 부분이라 기꺼이 친구 맺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친구 추가한 몇몇이, 나와 굉장히 비슷한 취향을 가졌을 때 왠지 모르게 느낀 반가움 역시 크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에게 영화 추천을 부탁하는 대신, 높은 별점 목록을 후루룩- 보면서 내가 안 본 영화를 체크해서 To watch list에 쟁여놓은 기분 또한 든든하고 뿌듯하다. 내가 별점을 잘 준 영화를 보고 나서 잘 봤다는 피드백이 왔을 때 마음 속에 퍼지는 뿌듯함도 왓챠의 친구추가 기능이 주는 기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이 왓챠의 본질은 아니다. 

남보기에 번듯한 별점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내가 좋다고 한 영화가 인정받는 것이,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하는 본연의 목적과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하여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 맺는 것도 자제하고 있다. SNS의 특징 아닌가, 남에게 휘둘리고 남보기에 좋은 것을 보여주고, 부끄러운 것은 숨기고. 그런 건 이미 인스타그램으로 충분하다. 내가 즐기는 영화 취향에서까지 그래야할 이유는 없는데- 심지가 굳지 않은 나는 SNS의 특징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조용히 그 전투장을 나가는 것이 맞다. 

 

가령 영화 중에는 흔히들 혹평을 받는데도 나는 좋은 영화들이 있다. 혹은 나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데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다. 길티플레저가 있는 영화도 있고,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조차 남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영화도 있다. 이런 것들이 거짓없이 고스란히 모여야, 나의 취향이 되고 나의 기록이 된다. 

 

남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다듬어진 취향이야 굳이 왓챠에 기록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말로 하면 된다. 내 온전한 기록, 그게 그 날의 감정에 의한 것이든, 같이 본 사람에 의한 것이든 이미 영화에 대해 내가 갖게 된 어떤 인상은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내가 온전히 갖고 있고 싶다. 거짓을 기록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거짓이 진실처럼 되어버리고, 기록하지 않은 진실은 휘발되어서 한 때 진실이었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순 없지만, 내게 의미있었던 조각을 남부끄러워 숨겨버리고 그게 숨겨져 남아있는게 아니라 사라져버리게 되는- 그렇게 놓치는 나만의 소중함을 줄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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